요리하는 남자는 무적이다라는 좌우명을 가슴에 새기고
주방에 선 지도 어느덧 수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숟가락만 얹던 무뚝뚝한 50대 아저씨였지만,
이제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직접 닭을 손질하고 인삼을 다듬는 시간이
제 인생의 가장 든든한 낙이 되었습니다.
밖에서 아무리 어깨가 무거워도,
앞치마를 두르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육수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제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오늘은 이런 무적의 기운을 담아,
우리 식구들의 기운을 확 살려주는 삼계탕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눠보려 합니다.
1.계삼탕에서 삼계탕으로, 그리고 청춘의 상징 '웅추' 이야기

삼계탕은 단순한 보양식을 넘어 우리 민족의 지혜가 담긴 소울푸드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이름이 '삼계탕'이 아니라
인삼보다 닭을 앞세운 '계삼탕'이었다는 점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인삼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금의 삼계탕으로 이름이 바뀌었지요.
제 어릴 적 기억 속 삼계탕은
시골 할머니 댁 뒷마당에서 뛰놀던 닭들을 잡아 가마솥에 푹 고아내던
그 투박한 풍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늘 "기운 센 놈으로 잡아야 국물이 진하다"고 말씀하셨죠.
여기서 한 가지 비밀을 알려드리자면,
우리가 즐겨 먹는 삼계탕 닭은 대부분 '웅추(雄雛)'라고 불리는 어린 수탉입니다.
삼계탕용 닭은 암탉일까 수탉일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보통 산란계와 육계의 혼합종으로 태어난 어린 수탉들이 주를 이룹니다.
마치 우리네 인생의 가장 혈기 왕성한 청춘 시절처럼,
기름기가 적고 근육이 탄탄해서 국물 맛이 담백하고 육질이 쫄깃하죠.
삼계탕에서는 이 팔팔한 수탉의 기운이 국물에 녹아들어야 제맛이 납니다.
저 같은 50대 아빠들도 가끔은 이 어린 수탉처럼 다시금 세상에 맞설 기운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아직도 남자들은 철이 안든 고2가 가슴 속에 있답니다,)
삼계탕 한 그릇을 끓이며 그 활력을 가족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2.마트에서 만나는 실전 장보기, '웅추'를 찾아내는 안목
삼계탕 맛의 절반은 역시 재료 고르기에서 결정됩니다.
제가 마트 장보기를 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중 하나는
그냥 무조건 큰 닭이 좋은 줄 알고 샀다가
국물이 기름지고 살이 퍽퍽해져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는 겁니다.
삼계탕용 닭은 '영계' 혹은 '웅추'라고 적힌 작은 사이즈(보통 5호나 6호)를 고르는 게 팁입니다. 웅
추는 다리가 길고 뼈가 단단하며 살이 탄탄한 게 특징인데,
마트 아저씨랑 친해지면 "오늘 웅추 들어왔나요?" 하고
넌지시 물어보며 고수 인 척하는 위트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인삼과 대추, 마늘은 필수 조연입니다.
인삼은 너무 크지 않아도 향이 진한 6년근 수삼을 고르고,
대추는 알이 굵고 붉은색이 선명한 것이 좋습니다.
한 번은 인삼이 몸에 좋다고 너무 많이 넣었다가
국물이 써서 아이들이 안 먹겠다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는데,
뭐든 과유불급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마트에서 다시금 배웠습니다.
재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적절한 양을 담는 것,
그것이 주방을 책임지는 가장의 절제미 아닐까 싶습니다.
3.50대 남자의 투박하지만 확실한 실전 레시피

1.닭 손질과 기름기 제거
닭은 항문 쪽의 기름 덩어리와 날개 끝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야 국물이 깔끔합니다.
저는 닭 속에 남아있는 핏물까지 흐르는 물에 아주 꼼꼼하게 씻어내는데,
이렇게 해야 잡내 없이 담백한 삼계탕이 완성됩니다.
(갈비 안쪽에 폐가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손이 조금 시려도 가족을 위해 이 정도 수고는 기꺼이 하는 것이 '무적의 요리사'다운 자세죠.
2.속 채우기와 '무적'의 다리 꼬기
불린 찹쌀과 마늘, 대추, 인삼을 닭 배 속에 꽉 채워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팁! 닭 다리 한쪽에 칼집을 내어 반대쪽 다리를 끼워 넣는
'다리 꼬기' 공법을 사용하세요.
이렇게 닭을 단단하게 여며줘야 끓이는 동안 찹쌀이 빠져나가지 않고
예쁜 모양이 유지됩니다.
마치 50대 가장이 가정을 단단하게 지탱하듯,
닭 다리도 야무지게 꼬아주는 게 포인트입니다.
3.뭉근하게 고아내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한약재와 함께 닭을 넣습니다.
처음에는 센 불에서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줄여서 최소 40분에서 1시간 정도 푹 고아줍니다.
중간중간 떠오르는 거품은 숟가락으로 살살 걷어내세요.
거품을 걷어낼 때마다 국물이 맑아지는 걸 보면 제 마음의 잡념도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닭고기가 뼈에서 쏙 분리될 정도로 부드러워지면 완성입니다.
4.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게, 보관과 재활용의 지혜

삼계탕은 갓 끓여서 뚝배기에 담아냈을 때 가장 위엄이 넘칩니다.
플레이팅은 별거 없습니다.
송송 썬 대파를 한 줌 올리고 소금과 후추를 곁들이면 끝이죠.
잘 익은 깍두기나 마늘쫑 장아찌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닭고기를 다 먹고 나서 배 속의 찹쌀죽을 국물에 풀어 먹을 때,
비로소 원기가 완전히 충전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남은 삼계탕 보관은 제 전공입니다.
한 번에 많이 끓였다면 고기는 따로 발라내고 국물과 함께 소분해서 냉동 보관하세요.
나중에 해동해서 끓일 때 불린 쌀만 좀 더 넣고 끓이면 아주 훌륭한 '닭죽'이 됩니다.
바쁜 아침에 이 닭죽 한 그릇이면 온 가족이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죠.
주방을 지키는 아빠의 정성이 담긴 이 한 그릇이
우리 가족의 내일을 만드는 무적의 에너지가 되길 바랍니다.
남은 음식도 낭비 없이 챙기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살림을 아는 50대 남자의 여유입니다.